AX시대에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가 필요한 이유Why a design studio still matters in the age of AI.

서로 다른 두 회사가 있습니다. 각 회사의 직원들이 AI 도구로 세일즈 덱을 만들죠. 로고만 다르고 나머지는 비슷합니다. 첫 장의 회사 소개 세 줄, 시장을 설명하는 네 칸 배치 레이아웃, 가운데 정렬된 문장까지. 고객 입장에서는 이 세일즈 덱을 보고 브랜드를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생성형 AI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회사의 로고를 적용한 브랜드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일은 쉬워졌습니다. 창업자나 마케터, 세일즈 등 여러 직무에서 디자이너와 협업을 하지 않더라도 그럴싸해보이는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로 만든 결과물은 변별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전문 브랜드 스튜디오를 써야 하는 이유 가운데 사라진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실행 단가가 내려갔습니다. 시안을 여러 가지 만드는 일, 적용물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일, 랜딩 페이지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도구가 더 좋아질수록 더 내려가고 있고 이 흐름은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속도에서 밀립니다. 초기 팀이 일주일 안에 랜딩을 세우고 검증에 들어가는 구간에 스튜디오가 낄 자리는 없습니다. 협업에는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하고 그 절차가 곧 지연입니다. 이 구간에서 스튜디오는 더 비싼 도구일 뿐입니다.
결과물의 하한선이 올라갔습니다. 예전에는 못 만든 것과 만든 것의 차이가 컸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만듭니다. 촌스러워서 고민이라는 이유로 시작되던 문의는 줄어들 것입니다.
같은 도구를 쓰는 회사가 늘면 시장에서 구별되지 않습니다. 개별 결과물의 품질이 낮아서가 아니라 결과물끼리 비슷해져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동질화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인디애나대학교 연구진은 약 1만 개 사이트의 화면 227,000장을 컴퓨터 비전으로 분석했습니다.1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웹 디자인은 오히려 다양해졌습니다. 이후 방향이 바뀌었고 레이아웃 유사도 거리는 2010년부터 2019년 사이 44% 줄었습니다. 연구진은 소수의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 사용이 확대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동질화는 도구의 확산과 함께 시작됐고, AI는 이 흐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속도를 올렸습니다.
속도가 올라간 이유는 모델의 작동 방식에 있습니다. 모델은 학습한 데이터에서 가장 흔한 패턴을 꺼냅니다. 무엇을 만들지 지시가 느슨할수록 가장 흔한 답이 나옵니다. 생성된 결과물이 다시 학습 데이터가 되면서 폭은 더 좁아집니다.
개별 회사에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문제는 그 선택이 모이는 지점에서 생깁니다. AI가 제시한 아이디어로 단편소설을 쓴 실험에서 결과물은 더 창의적이고 잘 쓰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상승폭은 원래 창의성이 낮았던 작가에게서 가장 컸습니다. 동시에 AI를 사용한 소설끼리는 사람만 쓴 소설보다 서로 더 비슷했습니다.2 연구진은 이를 사회적 딜레마로 불렀습니다. 개인은 도구를 쓰는 편이 낫고 집단의 새로움은 줄어듭니다.
브랜드는 집단 안에서 구별되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딜레마는 브랜드에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시장에서 구별되려고 만든 자산이 시장을 균질하게 만드는 도구로 제작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AI를 불신할까요? 절반만 맞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 조사를 AI 사용 자체에 반응하지 않는 응답이 다수입니다. 신뢰가 떨어진다는 응답은 소수이고, 신뢰가 올라간다는 응답은 그보다 더 적습니다. 대다수는 중립에 머뭅니다. AI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시장이 등을 돌리지는 않습니다.
반응이 나타나는 조건은 따로 있어 보입니다. AI가 드러날 때입니다. 2024년 코카콜라의 연말 광고가 그 예로 자주 거론됩니다. 사전 테스트에서는 카테고리 평균을 크게 웃도는 점수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AI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건을 공개한 후에는 정반대 반응이 나왔습니다. 결과물은 같았고 알려진 정보만 달랐습니다.
반대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었다는 표시를 붙이는 것은 큰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자는 별도 표시가 없으면 이미 사람이 만들었다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협업 과정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을 때 오히려 평가가 좋아졌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것에 값이 붙는다기보다, AI가 보이는 쪽에서 값이 깎이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AI를 쓰지 않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티가 나지 않게 만드는 판단이 필요할 뿐입니다.
제도도 한 겹 더해졌습니다. 2026년 1월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은 생성형 AI 결과물에 표시 의무를 부과했습니다.3 방식은 눈에 보이는 표시와 워터마크, 메타데이터로 나뉩니다. AI가 관여했는지 여부가 취향의 문제에서 확인 가능한 사실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제작하는 비용이 내려가면 무엇을 만들지 정하는 기획의 가치가 상승합니다. 실행이 쉬워질수록 판단이 희소해지기 때문입니다. AX 시대에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하기 위해서 필요한 관점은 세가지입니다.
도구는 요청받은 것을 만들고 요청이 틀렸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들기 전에 만들지 말지를 정하는 판단이 먼저 필요합니다.
크몽 리브랜딩에서 저희는 새 심볼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만들 수 있었지만 만들지 않았습니다. 새 심볼은 그 의미를 시장에 처음부터 설득해야 하는 비용을 만듭니다. 13년 쌓인 이름이 이미 자산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 자체를 워드마크로 세웠습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노란색은 버렸습니다. 국내 주요 플랫폼이 이미 노란색을 쓰고 있었습니다. 광고를 집행해도 크몽으로 기억되지 않는 조건이었습니다. 색을 고르는 작업이 아니라 시장에서 무엇과 겹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판단의 재료가 브랜드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습니다.
반대 방향의 결정도 있습니다. 국보디자인 리브랜딩에서 브랜드 컬러는 교체하지 않았습니다. 톤만 조정했습니다. 43년 쌓인 색을 지우면 오래 거래한 고객 기업이 낯설어합니다. 사명도 유지했고, 슬로건과 워드마크 형식, 표기 단위를 바꾸는 것으로 포지션을 옮겼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답을 버려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근 작업한 임상 AI 기업에서 렌즈 형태의 동심원과 계측기 모티프는 검토 후 재도입 금지 목록에 올랐습니다. 그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말은 이미 여러 곳이 쓰고 있다는 뜻입니다. 학습 분포에서 가장 흔한 답을 꺼내는 도구는 이 결정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크몽의 실체는 변호사와 세무사, IT 개발사가 들어와 있는 전문가 플랫폼이었습니다. 시장 인식은 가볍고 간단한 작업을 맡기는 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인식을 붙잡고 있던 것이 원숭이 캐릭터였습니다.
안에서 보면 캐릭터는 오래 쌓은 자산입니다. 밖에서 보면 인식을 고정하는 장치입니다. 같은 대상이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힙니다. 이 판단은 회사가 가진 자료 안에 없습니다.
국보디자인의 문제도 같은 성격이었습니다. 코스닥 상장사인데 워드마크가 그 규모를 말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회사 소개 문구를 늘리는 대신 로고 자체가 규모를 말하게 했습니다. 산세리프를 세리프로 바꾸고 표기 단위를 더했습니다.
혼자 쓰는 브랜드에는 규칙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 팀이 각자 자료를 만드는 회사에는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판단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료 기관의 문서군을 정비한 작업이 있었습니다. 문서마다 헤더 색이 파랑과 청록과 회색으로 갈려 있었고 기관명 표기도 달랐습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판단 기준이 문서에 없고 담당자에게 있었을 뿐입니다. 색을 하나로 통일하고 표기를 고정했습니다.
이 문제는 AI 때문에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AI 때문에 커집니다. 자료를 만드는 속도가 올라가면 규칙 없는 자료가 쌓이는 속도도 같이 올라갑니다.
해결책은 문서가 아니라 파일입니다. 실무자는 가이드라인을 읽기 전에 파일을 먼저 엽니다. 듀당스가 프레젠테이션 템플릿을 산출물에 넣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라이트와 다크 두 벌을 만들고 페이지마다 역할 태그를 붙입니다. 한 페이지에 하나만 씁니다. 규칙을 읽지 않아도 규칙대로 만들어지는 상태가 목적입니다.
AI로 빠르게 만들어 검증하는 구간이 있고, 그 결과를 브랜드로 고정해야 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아래 항목은 두 번째 구간에 들어섰을 때 나타나는 상태입니다.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한다면 브랜드를 정리할 시점입니다.
마지막 항목이 AI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 자주 나옵니다. 데이터 라벨링 회사가 플랫폼 기업이 되고, 상담 솔루션 회사가 온디바이스 AI 기업이 됩니다. 사업은 옮겨갔는데 브랜드는 출발점에 남아 있습니다. 이 간극은 도구로 메울 수 없습니다. 회사를 다시 정의하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스튜디오를 선택하는 이유는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만들지 정할 수 없어서입니다. 실행이 값싸질수록 결정의 무게가 커지고, 잘못 정한 것을 빠르게 많이 만들면 손실도 그만큼 커집니다. 듀당스는 판단만 넘기고 실행을 맡기지 않습니다. 정하는 일과 만드는 일을 같이 합니다. 초기 기업의 브랜드 구축, 사업 전환에 따른 리브랜딩, 해외 진출과 상장을 앞둔 브랜드 정비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듀당스는 판단을 돕는 브랜드 스튜디오입니다. 무엇을 만들고 AI 에이전트에게 시킬지 정하고 나온 것 가운데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일을 합니다. 만들지 않기로 하는 결정, 밖에서 회사를 보는 시선, 규칙을 파일로 옮기는 설계. 셋 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앞에 있는 판단이고, 도구가 대신하지 못합니다.
우리 브랜드가 경쟁사와 구별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면 듀당스에 문의해주세요.
글 듀당스(Duedance) · 편집 차영우